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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훼손 [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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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4-01-05

본문

【판시사항】


[1] 학문의 자유의 본질 및 학문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의 한계 / 학문적 표현행위가 기본적 연구윤리를 위반하거나 해당 학문 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나 학문적 과정이라고 보기 어려운 행위의 결과라거나, 논지나 맥락과 무관한 표현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경우, 이를 학문적 연구를 위한 정당한 행위로 보아야 하는지 여부(적극) / 학문 연구자들이 연구 주제의 선택, 연구의 실행뿐만 아니라 연구 결과 발표에 이르기까지 존중하여야 하는 타인의 권리


[2] 객관적으로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사실에 관한 발언이 보도, 소문이나 제3자의 말을 인용하는 방법으로 단정적인 표현이 아닌 전문 또는 추측의 형태로 표현되었으나 표현 전체의 취지로 보아 사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경우, 명예훼손죄에서의 ‘사실의 적시’로 인정되는지 여부(적극) / 학문적 연구에 따른 의견 표현을 명예훼손죄에서의 사실의 적시로 평가할 때 유의하여야 할 사항 / 학문적 표현을 그 자체로 이해하지 않고, 표현에 숨겨진 배경이나 배후를 섣불리 단정하는 방법으로 암시에 의한 사실 적시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소극)


[3]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의 구성요건을 이루는 사실에 대한 증명책임 소재(=검사) / 학문적 표현이 학문의 자유로서 보호되는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한 증명책임 소재(=검사)


【판결요지】


[1] 정신적 자유의 핵심인 학문의 자유는 기존의 인식과 방법을 답습하지 아니하고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거나 비판을 가함으로써 새로운 인식을 얻기 위한 활동을 보장하는 데에 그 본질이 있다. 학문적 표현의 자유는 학문의 자유의 근간을 이룬다. 학문적 표현행위는 연구 결과를 대외적으로 공개하고 학술적 대화와 토론을 통해 새롭고 다양한 비판과 자극을 받아들여 연구 성과를 발전시키는 행위로서 그 자체가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적 과정이며 이러한 과정을 자유롭게 거칠 수 있어야만 궁극적으로 학문이 발전할 수 있다. 헌법 제22조 제1항이 학문의 자유를 특별히 보호하는 취지에 비추어 보면, 학문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따라서 학문적 표현행위는 기본적 연구윤리를 위반하거나 해당 학문 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나 학문적 과정이라고 보기 어려운 행위의 결과라거나, 논지나 맥락과 무관한 표현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학문적 연구를 위한 정당한 행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헌법 제10조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하고 있고, 인격권에 대한 보호 근거도 같은 조항에서 찾을 수 있다. 학문 연구도 헌법질서 내에서 이루어질 때에 보호받을 수 있으므로, 인간의 존엄성 및 그로부터 도출되는 인격권에 대한 존중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연구 주제의 선택, 연구의 실행뿐만 아니라 연구 결과 발표에 이르기까지 타인의 명예를 보호하고, 개인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며, 사생활의 비밀을 보호하는 것을 소홀히 하여서는 안 된다. 특히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와 같이, 연구에 대한 의견을 표출하거나 연구 결과를 반박하는 데에 한계가 있는 개인이나 집단을 대상으로 연구를 하는 경우에는, 연구의 전 과정에 걸쳐 이들의 권리를 존중하여야 할 특별한 책임을 부담한다.


[2] 대법원은 명예훼손죄에서 ‘사실의 적시’에 관하여, 객관적으로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사실에 관한 발언이 보도, 소문이나 제3자의 말을 인용하는 방법으로 단정적인 표현이 아닌 전문 또는 추측의 형태로 표현되었더라도, 표현 전체의 취지로 보아 사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경우에는 사실의 적시로 인정하여 왔다.


하지만 학문적 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학문적 연구 결과 발표에 사용된 표현의 적절성은 형사 법정에서 가려지기보다 자유로운 공개토론이나 학계 내부의 동료평가 과정을 통하여 검증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므로 학문적 연구에 따른 의견 표현을 명예훼손죄에서 사실의 적시로 평가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역사학 또는 역사적 사실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학문 영역에서의 ‘역사적 사실’과 같이, 그것이 분명한 윤곽과 형태를 지닌 고정적인 사실이 아니라 사후적 연구, 검토, 비판의 끊임없는 과정 속에서 재구성되는 사실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학문적 표현을 그 자체로 이해하지 않고, 표현에 숨겨진 배경이나 배후를 섣불리 단정하는 방법으로 암시에 의한 사실 적시를 인정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보기 어렵다.


[3]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의 구성요건을 이루는 사실은 그것이 주관적 요건이든 객관적 요건이든 그 증명책임이 검사에게 있으므로, 해당 표현이 학문의 자유로서 보호되는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은 검사가 증명하여야 한다.


【참조조문】


[1] 헌법 제10조, 제22조 제1항, 형법 제307조 제2항

[2] 헌법 제22조 제1항, 형법 제307조 제2항

[3] 헌법 제22조 제1항, 형법 제307조 제2항, 형사소송법 제308조


【참조판례】


[1] 대법원 2018. 7. 12. 선고 2014도3923 판결(공2018하, 1663) / [2] 대법원 2008. 11. 27. 선고 2007도5312 판결(공2008하, 1831)



【전문】


【피 고 인】


피고인


【상 고 인】


피고인 및 검사



【원심판결】


서울고법 2017. 10. 27. 선고 2017노610 판결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이 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피고인의 상고이유에 관한 판단 


가.  이 부분 공소사실의 요지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였던 피해자들은, 일본 제국의 매춘부와는 달리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로 강제 동원되거나 강제 연행되어 일본군의 감시 아래 전시상황의 중국, 동남아 등지에 설치된 위안소에 갇혀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도 보장받지 못한 채 하루에 수십 명의 군인들을 상대하며 성적 쾌락의 제공을 강요당한 ‘성노예’에 다름없었다. 또한 해야 할 일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면서 본인 또는 부모의 선택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가 아니었으며, 일본 제국과 일본군에 애국적 또는 자긍적으로 협력한 사실이 없었다. 그리고 일본군은 위안소를 설치, 운영하고 위안부를 국외 송출하는 과정에 강제 동원과 강제 연행의 방법으로 광범위하게 개입하는 등의 행위를 하였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다음과 같은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이하 ‘이 사건 도서’라 한다)을 출판하고 그 무렵 전국 서점 등을 통해 배포하여 공연히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였다.


1) 피고인은 이 사건 도서에서 "조선인 위안부 역시 ‘일본 제국의 위안부’였던 이상 기본적인 관계는 같다.", "여성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위안부를 하게 되는 경우는 없었다.", "1996년 시점에 ‘위안부’란 근본적으로 ‘매춘’의 틀 안에 있던 여성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라는 등 원심 판결문 별지 범죄일람표(이하 ‘범죄일람표’라 한다) 순번 7, 11, 16, 27, 30, 34와 같은 내용을 기재하여 명시적 또는 암시적으로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들은 일의 내용이 군인을 상대하는 매춘임을 인지한 상태에서 생활을 위해 본인의 선택에 따라 ‘위안부’가 되어 경제적 대가를 받고 성매매를 하는 매춘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다."라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였다.


2) 피고인은 이 사건 도서에서 "이들이 ‘전쟁범인’, 즉 전범들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된 이유는 이들이 ‘일본군’과 함께 행동하며 ‘전쟁을 수행’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들이 일본옷을 입고 일본이름을 가진 ‘일본인’으로서 ‘일본군’에 협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똑같은 손으로 그녀들을 손가락질할지도 모른다."라는 등 범죄일람표 순번 7, 10, 23과 같은 내용을 기재하여 명시적 또는 암시적으로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들은 일본군과 동지의식을 가지고 일본 제국 또는 일본군에 애국적, 자긍적으로 협력하였다."라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였다.


3) 피고인은 이 사건 도서에서 "‘위안부’들을 ‘유괴’하고 ‘강제 연행’한 것은 최소한 조선 땅에서는, 그리고 공적으로는 일본군이 아니었다."라는 등 범죄일람표 순번 5, 16, 20, 26과 같은 내용을 기재하여 명시적 또는 암시적으로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들의 동원 과정에서 일본군의 강제 연행은 없었다. 있다고 한다면 군인 개인의 일탈에 의한 것이어서 공적으로 일본군에 의한 것이 아니다."라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였다.

 

나.  원심 판단의 요지


원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범죄일람표 순번 5, 7, 10, 11, 16, 20, 23, 26, 27, 30, 34 기재 표현(이하 ‘이 사건 각 표현’이라 한다)에 관한 이 부분 공소사실을 무죄로 인정한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이를 유죄로 판단하였다.


1) 이 사건 공소사실 중 이 사건 각 표현은 단순히 피고인의 분석 또는 의견을 제시한 것을 넘어 증거에 의하여 증명 가능한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


2) 피고인이 사용한 이 사건 각 표현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저하시키기에 충분하며, 이 사건 각 표현을 접하는 독자나 사람들이 객관적인 사실과 다른 내용, 즉 "전체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또는 많은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들은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되어 경제적 대가를 받고 성매매를 하였고, 애국적으로 일본군에 협력하고 함께 전쟁을 수행하였으며, 일본 제국과 일본군은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를 강제 동원하거나 강제 연행하지 않았다."라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서술되어 있으므로 적시된 사실의 허위성 또한 인정된다.


3)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집단의 성격 및 크기, 집단 내에서 피해자들의 지위, 이 사건 도서 및 표현의 내용 및 서술 방식,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역사적, 사회적 상황 등을 감안하면, 이 사건 도서를 읽는 독자들에게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는 자신이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임을 밝히고 일본 정부에 사죄와 책임을 요구하는 이 사건 피해자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4) 이 사건 각 표현의 서술 방식 등에 비추어 피고인은 이 사건 각 표현에서 적시한 사실이 허위인 점과 그 사실이 피해자들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였다고 보이므로 명예훼손의 고의 또한 인정된다.

 

다.  대법원의 판단


1) 관련 법리


가) 정신적 자유의 핵심인 학문의 자유는 기존의 인식과 방법을 답습하지 아니하고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거나 비판을 가함으로써 새로운 인식을 얻기 위한 활동을 보장하는 데에 그 본질이 있다(대법원 2018. 7. 12. 선고 2014도3923 판결 참조). 학문적 표현의 자유는 학문의 자유의 근간을 이룬다. 학문적 표현행위는 연구 결과를 대외적으로 공개하고 학술적 대화와 토론을 통해 새롭고 다양한 비판과 자극을 받아들여 연구 성과를 발전시키는 행위로서 그 자체가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적 과정이며 이러한 과정을 자유롭게 거칠 수 있어야만 궁극적으로 학문이 발전할 수 있다. 헌법 제22조 제1항이 학문의 자유를 특별히 보호하는 취지에 비추어 보면, 학문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따라서 학문적 표현행위는 기본적 연구윤리를 위반하거나 해당 학문 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나 학문적 과정이라고 보기 어려운 행위의 결과라거나, 논지나 맥락과 무관한 표현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학문적 연구를 위한 정당한 행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헌법 제10조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하고 있고, 인격권에 대한 보호 근거도 같은 조항에서 찾을 수 있다. 학문 연구도 헌법질서 내에서 이루어질 때에 보호받을 수 있으므로, 인간의 존엄성 및 그로부터 도출되는 인격권에 대한 존중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연구 주제의 선택, 연구의 실행뿐만 아니라 연구 결과 발표에 이르기까지 타인의 명예를 보호하고, 개인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며, 사생활의 비밀을 보호하는 것을 소홀히 하여서는 안 된다. 특히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와 같이, 연구에 대한 의견을 표출하거나 연구 결과를 반박하는 데에 한계가 있는 개인이나 집단을 대상으로 연구를 하는 경우에는, 연구의 전 과정에 걸쳐 이들의 권리를 존중하여야 할 특별한 책임을 부담한다.


나) 대법원은 명예훼손죄에서 ‘사실의 적시’에 관하여, 객관적으로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사실에 관한 발언이 보도, 소문이나 제3자의 말을 인용하는 방법으로 단정적인 표현이 아닌 전문 또는 추측의 형태로 표현되었더라도, 표현 전체의 취지로 보아 사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경우에는 사실의 적시로 인정하여 왔다(대법원 2008. 11. 27. 선고 2007도5312 판결 등 참조).


하지만 학문적 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학문적 연구 결과 발표에 사용된 표현의 적절성은 형사 법정에서 가려지기보다 자유로운 공개토론이나 학계 내부의 동료평가 과정을 통하여 검증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므로 학문적 연구에 따른 의견 표현을 명예훼손죄에서 사실의 적시로 평가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역사학 또는 역사적 사실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학문 영역에서의 ‘역사적 사실’과 같이, 그것이 분명한 윤곽과 형태를 지닌 고정적인 사실이 아니라 사후적 연구, 검토, 비판의 끊임없는 과정 속에서 재구성되는 사실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학문적 표현을 그 자체로 이해하지 않고, 표현에 숨겨진 배경이나 배후를 섣불리 단정하는 방법으로 암시에 의한 사실 적시를 인정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보기 어렵다.


다)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의 구성요건을 이루는 사실은 그것이 주관적 요건이든 객관적 요건이든 그 증명책임이 검사에게 있으므로, 해당 표현이 학문의 자유로서 보호되는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은 검사가 증명하여야 한다.


2) 판단


원심판결과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아래의 사실들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각 표현은 피고인의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평가함이 타당하고,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만한 ‘사실의 적시’로 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 피고인은 오랜 기간 대학의 일어일문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일본 문학과 한일 근현대사를 연구하였다. 피고인은 한일 갈등의 핵심에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구축할 수 없다고 보고, 그 해결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여 연구 결과를 저서로 출판하였다. 이 사건 도서는 위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학문적 표현물로 보인다.


피고인은 이 사건 도서 집필 과정에서 국내외의 다양한 문헌과 사료를 조사하여 이 사건 도서에 직간접적으로 인용하였고, 기록상 피고인이 이 사건 도서 집필 과정에서 인문·사회분야 연구자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연구윤리를 위반하여 사료 등 연구 자료를 위조, 변조하였다거나, 학문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나는 부정행위를 하였다는 사정은 확인되지 않으며, 피고인이 이 사건 도서의 기획, 집필, 발간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인 피해자들의 자기결정권이나 사생활 비밀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이들의 존엄을 경시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도 확인되지 않는다.


나) 이 사건 도서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맥락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검사의 주장처럼 일본군에 의한 강제 연행을 부인하거나, 조선인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매춘행위를 하였다거나, 일본군에 적극 협력하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이 사건 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고, 이 사건 각 표현이 그러한 주장을 전제하고 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피고인은 이 사건 도서에서 강제로 끌려가는 이들을 양산한 구조를 만든 것이 일본 제국 또는 일본군이라는 점은 분명하고,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가 일본 제국의 구성원으로서 피해자인 동시에 식민지인으로서 일본 제국에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모순된 상황에 처해 있었다는 점을 여러 차례에 걸쳐 밝히고 있다. 이는 공소사실에 기재된 것과 같은 ‘위안부의 자발성’, ‘강제 연행의 부인’, ‘동지적 관계’와는 거리가 있다.


이 사건 각 표현 전후의 맥락이나 피고인이 밝히고 있는 이 사건 도서의 집필 의도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은 이 사건 도서 전체를 통해 피고인의 주제의식, 즉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하여 일본 제국이나 일본군의 책임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제국주의 사조나 전통적 가부장제 질서와 같은 다른 사회구조적 문제가 기여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으므로, 전자의 문제에만 주목하여 양국 간 갈등을 키우는 것은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점을 펼쳐 나가는 과정에서 그 주제의식을 부각하기 위해 이 사건 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 학문적 표현행위로 인하여 피해자 개인이 입는 인격권 침해의 정도는 그 표현이 가리키는 대상이 넓어지거나 표현의 내용이 일반화, 추상화될수록 희석될 수 있고, 이는 역사적 사실에 관한 표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이나 구성원 개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소규모 집단이나 비교적 균일한 특성을 갖고 있는 집단에 관한 과거의 구체적 사실의 표현은 비교적 진위 여부의 증명이 용이할 뿐만 아니라, 표현으로 인한 인격권 침해의 효과가 희석되지 아니한 채 피해자에게 그대로 미치게 된다. 반면 이를 넘어서는 범위의 집단에 관한 일반화되고 추상화된 표현은 증명 가능한 구체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시대상(時代相)을 정의하는 것과 같이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연구자 개인의 종합적 해석이나 평가로서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볼 여지가 커진다.


일본군 위안부의 전체 규모는 적게는 30,000명에서 많게는 400,000명까지 추산되고 있으며, 그중 조선인이 차지하는 비율 역시 50% 이상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를 구성원 개개인이 특정될 수 있는 소규모 집단으로 정의하기는 어렵고, 피해자들이 증언하고 있는 다양한 연행 경위나 피해 양상에 비추어 균일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라고 볼 수도 없다. 또한 이 사건 각 표현이 피해자 개개인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의 진술에 해당한다고도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 사건 각 표현은 개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전체에 관한 일반적, 추상적 서술에 해당하고,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피고인의 종합적 해석이나 평가로서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볼 여지가 있다.


라) 범죄일람표 순번 5, 16, 20, 26 표현에 사용된 ‘공적 강제 연행’의 개념에 관하여, 이를 일본 제국의 공식적인 정책에 의한 강제 연행으로 볼 수 있다는 검사의 주장과 달리, 피고인은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의 연행 과정에서 일부 군인의 일탈행위가 있었으나, 그것만으로 공식 계통을 통한 ‘공적 강제 연행’이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학문적 표현에 사용된 용어의 개념이나 범위에 관하여는 다양한 입장이 존재할 수 있다. 이 경우 국가가 다양한 학문적 견해 중 어느 하나의 견해만이 옳다고 선언하는 것은 학문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침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학문적 표현이 사실을 적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용어의 개념이나 포섭 범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해당 표현에서 취한 개념이 실제 학계에서 통용되는 것이거나, 통용되지 않더라도 문언의 객관적 의미나 대중의 언어습관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으며, 해당 표현이 용어에 대한 특정한 학문적 개념정의를 전제로 한 것임이 표현의 전후 맥락에 의하여 확인될 수 있는 경우에는, 사실의 적시가 아닌 학문적 견해 표명 내지 의견 진술로 보는 것이 학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헌법 정신에 들어맞는다.


‘공적 강제 연행’ 역시 국가나 군 차원에서 어느 정도의 개입이 존재하여야 이를 ‘공적 강제 연행’으로 부를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다양한 해석이나 주장이 가능하고, 피고인이 한 주장이 학계에서 주류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문언의 객관적 의미나 대중의 언어습관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해당 표현이 ‘공적 강제 연행’에 대한 학문적 개념 포섭을 전제로 한 것임은 표현 전후의 맥락에 의하여 충분히 확인될 수 있다. 따라서 이 사건 각 표현 중 ‘공적 강제 연행’에 관한 서술 부분은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마) 학문적 표현, 특히 역사적 사실에 관한 학문적 표현을 그 자체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표현에 숨겨진 배경이나 배후에만 주목하여 손쉽게 암시에 의한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는 없으므로, 최소한 학문적 표현에 포함된 특정한 문구에 의하여 그러한 사실이 곧바로 유추될 수 있을 정도의 표현은 있어야 암시에 의한 사실 적시를 인정할 여지가 있다. 그런데 범죄일람표 순번 7, 10, 11, 27, 30, 34 기재 표현의 경우, 그 표현 내의 문구만으로는 검사가 공소사실에서 ‘적시 사실’이라 주장한 ‘자발성’이나 ‘동지적 관계’에 관한 명제를 곧바로 이끌어 내거나 유추하기 어렵다. 범죄일람표 순번 23 기재 표현의 경우, 그 전후 맥락에 비추어 해당 표현은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가 일본 제국의 구성원으로서 피해자인 동시에 식민지인으로서 일본 제국에 협력할 수밖에 없는 모순된 상황에 처한 존재였다.’는 피고인의 주장을 설명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의 처지와 역할에 관한 피고인의 학문적 의견 내지 주장을 표명한 것으로 보일 뿐, 검사의 주장과 같이 해당 표현이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들은 일본군과 동지의식을 가지고 일본 제국 또는 일본군에 애국적, 자긍적으로 협력하였다.’는 명제를 단선적으로 전제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3) 소결


그런데도 원심은 이 사건 각 표현이 명예훼손죄에서의 사실 적시에 해당함을 전제로 이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였다. 이러한 판단에는 형법 제307조 제2항에서 정한 명예훼손죄의 사실 적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2.  검사 상고이유에 관한 판단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범죄일람표 순번 1, 2, 3, 4, 6, 8, 9, 12, 13, 14, 15, 17, 18, 19, 21, 22, 24, 25, 28, 29, 31, 32, 33, 35 기재 표현에 관한 원심판단에 명예훼손죄에서의 사실 적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3.  파기의 범위


위와 같은 이유로 원심판결 중 유죄 부분은 파기되어야 한다. 그런데 위 파기 부분은 원심이 이유에서 무죄로 판단한 부분과 일죄의 관계에 있으므로, 결국 원심판결은 전부 파기되어야 한다.

 

4.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오석준(재판장) 안철상 노정희(주심) 이흥구